한국인의 기본 음식 재료인 된장은 콩을 삶아서 띄운 메주와 소금물을 옹기 독에 넣어 장기간 숙성시킨 다음에 우러난 간장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를 계속 숙성시켜 만든 발효식품으로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거의 모든 식재료에 첨가되고 있다.
된장의 역사
된장은 콩의 원산지인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된장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혼인할 때(638년 2월) 납채품(納菜品) 가운데 '장시(醬豉)'가 보인다. 장시는 된장에 해당하며 필수적인 부식이자 기본적인 일상복식이면서 또한 의례용 물품인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사'에는 성종원년(982년)에 최승로의 건의문과 문종 3년(1049년) 개성에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휼하는 데 된장을 배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된장은 일반인이 평소에 먹은 음식이고 계층과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먹던 음식임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도 된장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폭넓게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된장이 수없이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된장은 하사품, 구휼품, 야인(野人)들의 요구품이자 지급품, 귀화인과 유민(流民)의 정착지원물품, 군사들의 기본 부식 등으로 쓰였다. 이로 보아 된장은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널리 먹은 부식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여러 조리서에는 된장의 종류와 담그는 법이 등장한다. 특히 신앙적 측면에서 거론할 만한 것은 장 담그는 데 길일(吉日)과 꺼리는 날이 있다는 기록이다. "장 담그는 길일은 정묘일(丁卯日)이니 신일(辛日)은 꺼린다. 정월 우수와 시월 입동에 장을 담근다. 수일(水日)에 장을 담그면 가시(蛆 : 구더기를 뜻함)가 생긴다. 삼복 안 황도일(黃道日 : 일종의 길일을 뜻함)에 콩을 담가 황도일에 쪄서 섞으면 벌레가 없다. 아낙네가 보는 것을 꺼린다. 삼복중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해 돋기 전과 해 진 뒤에 장을 담그면 파리가 안 꾄다. 그믐날 담 아래에서 얼굴을 북으로 돌리고 입 다문 채 말없이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꾄다. 초오(草烏 : 독성 강한 투구꽃) 6~7개를 4푼쯤 잘라서 독에 드리우면 가시(구더기)가 저절로 죽고 다시는 영영 생기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내용은 일정하게 음양사상이나 주술성을 깔고 있다. 이는 그만큼 된장을 담그는 데 정성을 들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된장의 의미
된장은 기본적으로 1년 이상의 단위로 소비가 된다. 김치나 간장과 같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부식이어서 정상적으로 잘 숙성되도록 하는 의례나 금기(禁忌)가 필요하였다. 가장 먼저 된장 담그는 날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월대보름부터 삼월삼짇날까지의 기간에 어떤 날을 정해서 담그는 것이 선호되었다.
전통적으로 일진에 말날, 돼지날, 닭날 등과 같은 덩치가 크고 털이 있는 동물의 날인 유모일(有毛日)이 선호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말은 된장이 '맑아져라'는 뜻, 닭은 된장이 '달아져라'는 뜻, 돼지날은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에서 '꿀처럼 달아라'는 뜻을 담은 언어적 유감주술이다.
그러나 된장 담그는 날을 택일할 때는 '언제 담근 장맛이 좋다'라는 개인의 경험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된장을 용날이나 삼짇날에 담가야 가장 맛이 있다고 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날에 담그면 맛이 있다는 뭔가의 기준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된장이 기온, 바람, 습도 등과 같은 자연조건에 반응하여 완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사람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힘이 작용하여 맛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택일된 날에 된장을 담그고 난 뒤에는 항아리에 금줄을 두른다. 왼새끼에 숯, 한지 한쪽, 붉은 고추를 꽂아서 장독 주둥이에 감아두었다. 그리고 불씨가 살아있는 숯을 장독 안에 집어넣기도 하고 붉은 고추와 대추도 함께 넣었다. 버선본을 장독의 배 부근에 거꾸로 붙여두기도 했다. 거꾸로 붙이는 것은 장독 주둥이로 들어가는 불순한 요소와 벌레 등으로 인한 부정(不淨)을 발로 짓밟겠다는 강력한 주술적 의미이다. 된장독에 친 금줄에서 왼새끼와 흰색 한지는 장을 신성시한다는 의미이고 붉은 것은 부정을 물리치는 힘, 숯은 정화력을 각각 상징한다.
된장 맛을 결정하는 데는 일정하게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장독에 금줄을 둘러서 초자연적인 힘 가운데 부정적인 힘을 물리치려고 했다. 담근 된장이 어느 정도 숙성되어 된장에서 간장을 분리하면 금줄을 걷어 낸다. 한편 된장을 담글 때 한지를 입에 물고 진행하는 금기와 같은 것이 있다. 이는 혹시라도 튀는 침을 막아서 된장을 탈 없이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된장 맛은 담그고 관리하는 솜씨에 따라서 집집마다 달랐다. 이로 인해 한 집의 된장 맛을 그 집의 여타일까지 연관 지어(확대해서) 보려는 태도와 인식이 형성되고 전승되어 왔다. "장이 단 집에 복이 많다", "며느리가 잘 들어오면 장맛도 좋아진다", "되는 집안에는 장맛도 달다", "장 맛보고 딸 준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는 말들이 그것이다. 이들 표현은 기본적으로 장맛을 가지고 그 집의 가풍, 인심, 흥망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가치관의 발로이다.
된장을 담글 때 주부들은 향후 탈 없이 잘 익도록 신앙관도 같은 정성을 쏟았다. 이러한 된장과 더불어 장에 대한 주부들의 정성과 염원은 장독대를 집안의 성역으로 여기고 장과 장독을 관장하는 신을 받들어 모시는 신앙을 형성하게 되었다. 호남지방의 '철륭' 또는 '철륭 할마이'와 중, 남부지방의 '칠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영남지방에서는 '이월할매'라고 하는 여성 신격이 장독대로 내려와서 머물다가 올라가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들 신앙은 좁게는 장과 장독으로 관련되지만 넓게는 주부들이 담당하는 가족의 생명보전에 관한 주요 가사활동을 관장하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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